(1) 총공회의 뿌리

  총공회는 해방 전 전통적인 조선 예수교 장로회(1912)에 뿌리를 두고 특히 호주 선교 영역이었던 경남 지방 교회의 신앙에 근거를 두었습니다. 본 교단의 지도자 백영희 목사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고신) 고려신학교를 제 8회로 졸업하고, 부산 서부교회에서 목회하던 중 고신 교단이 예배당 소송과 유엔군 철수 반대 성명서 발표 등 비 성경적이고 비신앙적인 행위에 가담하는 것을 보고 강력히 반대하다가 1959년 6월 상회 불복종으로 제명되었습니다. 그 후 경기 보류 노회(고신)에 가입 청원하였으나 보류 노회도 I.C.C.C 에 가입하므로 청원을 다시 철회하고 독립교회로 남아있으면서 하나님 중심과 성경 중심의 신앙 노선을 찾게 되었습니다.

(2) 총공회의 시작

 1966년 5월 26일 부산 서부교회 (백영희 목사 시무 )에서 제 1회 총공회로 모여 목사 10명과 장로 1명이 성경 법, 교회의 결의는 성경의 진리대로 일치 가결, 총공회장은 비상존으로 하는 개교회주의 공회 행정 체제를 세우고 하나님 중심과 성경 중심의 신앙 노선을 결의하여   "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공회" 로 출발하게 되되었습니다 (기독교 대연감 1986년 697쪽 한국 기독교 교단 형성 계보 참고)

(3) 총공회의 발전

  1965년 총공회 출발 당시 18개 교회, 1970년은 27개 교회로, 1975년 40개 교회로, 1980년은 62개 교회로, 1990년은 120개 교회로, 2001년은 200여개 교회로 부흥 발전하였습니다.

1975년에는 총공회 상임 운영위원회가 설치되고, 1976년에는 목회자 양육을 위하여 양성원 교수가 확보되므로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의 목회자 양성원이 개설되고, 많은 교회가 개척됨으로 총공회가 부흥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시작부터 보수와 개혁을 함께 가진 목회자의 자질육성에 힘쓰므로 개교회들이 개척되고 부흥하는 가운데 주일학교의 부흥은 특별하였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이 시무하신 부산 서부교회는 70여명의 주일학교가 1970년부터 부흥의 불이 불붙기 시작하여 1980년대로 계속되므로 성령이 친히 함께 하시는 표적으로 13,000명이 넘는 출석 학생으로 부흥하였습니다. 이것은 ‘세계 최대 주일 학교’로 언론에 소개되고, 1980년대에는 전국 주요 교단 교회들이 방문하므로 한국 교회에 주목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 1989년 8월 27일 순교하신 백영희 목사님께서 한국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신 것은 교리 개혁입니다. 많은 교훈 중에 특별히 대속 교리, 중생 교리, 구원 교리는 연구해야할 신학적 의의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개혁교회의 보수와 개혁이 여러 교단에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로 나타나듯이, 총공회에도 지금은 넓은 의미의 공회와 좁은 의미의 공회로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총공회의 교리 신조 행정은 좁은 의미의 공회로 보수되며, 보수 성향의 교단과 교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인물들로 교계와 신학계에 활동하고 있습니다.